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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의 여름은 또 한 번의 역대급 폭염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 붉게 달아오른 철근과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의 열기가 더해지는 건설 현장, 용광로 앞처럼 열기가 가득한 제조업 공장. 이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안전관리자, 현장소장, 그리고 대표님들의 마음은 벌써부터 무겁기만 합니다.

    매년 여름이면 반복되는 온열질환과의 전쟁. 그저 시원한 물과 소금을 제공하고, 그늘막을 설치하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임을 현장의 모두가 체감하고 있습니다. "이동식 에어컨이라도 한 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지만, 산업안전보건관리비(산 안비)의 깐깐한 사용 기준 앞에서 번번이 좌절했던 경험, 다들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복리후생비'로 처리하라는 답변에 아쉬움을 삼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고용노동부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산안비 집행의 '자율성'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지침 변경입니다. '자율'이라는 두 글자에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연 어디까지가 자율일까?", "잘못 사용했다가 과태료를 맞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공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가장 현실적인 고민, "과연 올해는 휴대용 에어컨을 산안비로 구매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명쾌한 답을 찾고 계실 실무자분들을 위해 오늘 이 글을 준비했습니다. 고용노동부의 변경된 지침을 심층 분석하고, 실무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액션 가이드까지, 여러분의 모든 궁금증을 속 시원히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1. "자율 집행", 장벽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문이 열린 것입니다

    이번 고용노동부의 산 안비 지침 변경의 핵심은 '자율'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됩니다. 하지만 이 '자율'을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이는 과거의 경직된 품목 중심의 규제에서 벗어나, 각 사업장의 특성과 실제 위험 요인에 맞춰 산안비를 보다 유연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한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과거의 산안비 집행 방식: "이 품목, 목록에 있나요?"

    기존의 산안비 집행은 고용노동부가 정해놓은 '사용 가능 품목' 리스트에 기반했습니다. 안전모, 안전화, 안전장갑처럼 명확하게 규정된 품목을 구매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시대의 변화와 현장의 새로운 위험 요인에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예를 들어, 미세먼지가 심각한 사회적 재난으로 떠올랐을 때, 현장 근로자를 위한 고성능 방진 마스크나 공기청정기를 산안비로 구매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해 오랜 기간 논란이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휴대용 에어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는 근로자의 건강을 지키는 '안전'의 개념보다는 '복지'나 '편의'의 개념으로 해석되어 산안비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 "이 품목, 왜 필요하죠?"

    이제 패러다임이 바뀌었습니다. 정부는 더 이상 "이 품목을 사도 되는가?"라고 묻지 않습니다. 대신 "이 품목이 우리 현장의 산업재해 예방과 근로자 건강 보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 사업장 스스로 답하고 증명하도록 요구합니다. 즉, 중요한 것은 품목 그 자체가 아니라 '사용의 목적과 타당성'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위험성 평가'가 있습니다. 사업주는 사업장의 유해·위험 요인을 스스로 파악하고, 이에 대한 개선 대책을 수립하여 실행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만약 위험성 평가를 통해 "우리 현장의 특정 공정(예: 밀폐된 지하 공간의 용접 작업, 환기가 어려운 기계실 등)은 여름철 고온으로 인해 근로자의 온열질환 발생 위험이 매우 높다"라고 판단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휴대용 에어컨의 설치"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면, 이는 산안비 사용의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더불어, '노사협의체' 또는 '근로자 대표'와의 협의 과정 역시 필수적인 절차로 부상했습니다. 과거 관리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집행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현장의 위험 요인에 대해 근로자와 함께 논의하고, 그 해결책으로 특정 물품(휴대용 에어컨 등)을 구매하기로 합의하는 과정 자체가 '자율 집행'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강력한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회의록과 같은 객관적인 자료는 향후 감사나 점검 시 "왜 이것을 산안비로 구매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답변이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자율 집행'은 단순히 규제가 풀린 것이 아니라, 현장의 위험성을 가장 잘 아는 사업주와 근로자가 함께 책임감을 가지고 최적의 안전 대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문을 통과하기 위해 더 철저하고 논리적인 준비를 해야 합니다.


    2. 휴대용 에어컨, '이렇게' 하면 구매 가능합니다

    많은 분들이 가장 궁금해하실 질문에 대한 답부터 드리겠습니다. "네, 이제 특정 조건을 충족한다면 휴대용 에어컨도 산안비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과거의 관행처럼 단순히 "더우니까 에어컨 삽시다"라는 접근 방식으로는 여전히 불가능합니다. 핵심은 앞서 설명드린 '사용 목적의 타당성'과 '객관적인 증빙'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복지용품'이 아닌 '안전용품'으로의 관점 전환

    휴대용 에어컨이 산안비로 인정받기 위한 첫걸음은, 이를 '편의'나 '복지'를 위한 물품이 아닌, 근로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필수 '안전용품'으로 규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온열질환(열사병, 열탈진 등)은 명백한 '산업재해'입니다. 특히 열사병은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질병입니다. 따라서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 특정 작업 공간의 온도가 근로자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면, 해당 공간의 온도를 직접적으로 낮추는 휴대용 에어컨은 온열질환이라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안전장치, 즉 '안전용품'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추락 위험이 있는 고소 작업에 안전벨트를 지급하고, 소음이 심한 작업장에 귀마개를 지급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입니다. 작업 환경의 특수한 위험(고온)에 대응하기 위한 필수적인 안전 조치로 휴대용 에어컨을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모든 곳'이 아닌 '위험한 곳'을 위한 선택

    여기서 주의할 점은, "우리 현장 전체가 더우니 모든 휴게실과 사무실에 에어컨을 설치하겠다"는 식의 접근은 여전히 목적 외 사용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산안비는 어디까지나 '산업재해 예방'이 목적이므로, 모든 공간에 대한 보편적인 냉방 제공은 복리후생비로 처리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따라서 휴대용 에어컨 구매는 온열질환 발생 위험이 특히 높은 고위험 작업 공간에 한정하여 추진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곳입니다.

    • 건설 현장: 외부와 차단된 지하층, 환기가 어려운 정화조나 탱크 내부, 햇볕에 직접 노출되는 옥상, 철골 구조물 위에서의 용접 작업 공간
    • 제조 현장: 열처리로나 용광로 주변, 통풍이 되지 않는 도장 부스, 발열이 심한 대형 설비가 밀집된 기계실

    이처럼 특정 공간을 명확히 지정하고, 해당 공간의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증명할 때 "휴대용 에어컨 구매는 타당한 산안비 집행"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됩니다.


    3. 과태료 걱정 끝! 실무자를 위한 '휴대용 에어컨' 산안비 집행 4단계 액션 가이드

    이론적인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다면, 이제 실무에 적용할 차례입니다. "나중에 문제 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 없이, 자신감을 가지고 휴대용 에어컨 구매를 추진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4단계 실행 방안과 증빙 서류 준비 노하우를 제시합니다. 아래의 체크리스트를 따라 차근차근 진행하시면 됩니다.

    [1단계] 위험성 평가를 통한 공식적인 근거 마련

    모든 것의 시작은 위험성 평가입니다. 기존에 실시한 위험성 평가 자료를 검토하거나, 혹서기 대비 특별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여 다음 내용을 반드시 문서화해야 합니다.

    • 고위험 장소 특정: 온열질환 발생 위험이 높은 작업 장소(예: 지하 2층 전기실, 옥외 배관 용접 지점 등)를 명확하게 지정합니다.
    • 위험 요인 구체화: "장비에서 발생하는 열과 밀폐된 구조로 인해 내부 온도가 40℃ 이상 상승", "직사광선 노출 및 통풍 부족으로 열사병 발생 위험 매우 높음"과 같이 위험 요인을 구체적인 수치와 상황으로 묘사합니다.
    • 개선 대책으로 '휴대용 에어컨' 명시: 기존의 대책(물, 식염 포도당, 휴식)만으로는 불충분함을 언급하고, 위험 요인을 직접적으로 제거 또는 감소시키기 위한 개선 대책으로 '휴대용(이동식) 에어컨 설치'를 공식적으로 기재합니다. 이것이 모든 증빙의 출발점이자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됩니다.

    [2단계] 노사협의체(또는 근로자 대표) 협의 및 회의록 확보

    위험성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노사협의체 또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개최합니다. 만약 해당 기구가 없다면 근로자 대표와의 회의를 진행하고, 반드시 회의록을 작성하여 보관해야 합니다.

    • 회의록 필수 기재 사항:
      • 안건: 혹서기 온열질환 예방 대책 및 산안비 사용에 관한 건
      • 논의 내용: 위험성 평가 결과 공유 (특정 장소의 고온 위험성 설명)
      • 의결 사항: "상기 위험 장소의 온열질환 예방을 위해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사용하여 휴대용 에어컨 ○대를 구매 및 설치하는 것에 노사가 합의함." 이라는 문구를 명확하게 기재합니다.
      • 참석자 서명: 참석한 노사 위원 전원의 서명을 받아 객관성을 확보합니다.

    [3단계] 목적과 근거를 명시한 품의서 작성

    이제 내부 결재를 위한 품의서를 작성합니다. 단순히 '휴대용 에어컨 구매 건'이라고 작성해서는 안 됩니다. 아래 내용을 포함하여 누가 보더라도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도록 작성해야 합니다.

    • 제목: 혹서기 온열질환 재해 예방을 위한 휴대용 에어컨 구매 품의
    • 목적: 고위험 작업 근로자의 온열질환(산업재해) 예방 및 안전한 작업 환경 조성
    • 근거:
      1.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도급인의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2. 2025년도 위험성 평가 결과 (회의록 번호: XXX)
      3. 제○차 노사협의체 회의록 (일자: 2025.XX.XX.)
    • 기대 효과: 온열질환 재해 발생률 감소, 근로자 작업 능률 향상 등

    [4단계] 구매 및 현장 비치 증빙 자료 철저 보관

    마지막으로, 구매와 관련된 모든 서류와 실제 사용 증거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 필수 보관 서류:
      • 위험성 평가 결과 보고서
      • 노사협의체 회의록 사본
      • 내부 결재가 완료된 품의서
      • 거래명세서 및 (세금)계산서
    • 결정적 증거, '사진' 촬영: 구매한 휴대용 에어컨을 위험성 평가에서 지정한 바로 그 고위험 장소에 설치하고, 근로자들이 실제 사용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보관합니다. 사진에는 날짜 정보가 포함되면 더욱 좋습니다. 이는 해당 물품이 개인적인 편의가 아닌, 명시된 목적에 맞게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시각적 증거가 됩니다.

    [추가 팁] 다른 혹서기 대비 품목들

    변경된 지침에 따라, 휴대용 에어컨 외에도 과거에는 애매했던 다른 품목들의 산안비 구매 가능성도 열렸습니다. 대규모 현장에서 다량의 얼음을 공급하기 위한 '제빙기', 넓은 야외 작업 공간의 그늘을 확보하기 위한 대형 '차광막', 최신 기술이 적용된 고기능성 '아이스 조끼' 등도 위와 같은 4단계 프로세스를 거친다면 충분히 산안비로 집행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항상 '왜 필요한가?'에 대한 논리적인 증명입니다.


    산안비 '자율 집행'으로의 변화는 현장의 안전관리자들에게 더 많은 고민과 책임을 안겨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경직된 규정 때문에 실행하지 못했던 실질적인 안전 대책을 펼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휴대용 에어컨의 산안비 구매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제 우리는 "안된다더라"는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되게 만들까?"를 고민하는 능동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철저한 위험성 평가와 투명한 노사 협의, 그리고 체계적인 증빙 자료라는 3박자가 갖춰진다면, 휴대용 에어컨은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아닌, 우리 현장 근로자들을 치명적인 온열질환으로부터 지켜주는 가장 든든한 '안전 방패'가 될 것입니다.

    올여름, 유연해진 산안비를 가장 강력한 무기로 삼아 모든 근로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 가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