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여행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만 선로를 따라 다양한 곳을 관광하는 것도 새로운 흥미를 줄 수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철도로 여행을 하기 좋은 곳 5개의 나라를 알려드릴게요.
기차 타고 유럽의 심장을 달리다 – 스위스의 파노라마 열차 여행
스위스에서 기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마치 천천히 펼쳐지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위스의 열차는 풍경을 '감상하는 방식' 그 자체다. 알프스의 만년설, 그림 같은 마을, 유유히 흐르는 강줄기까지… 창문 밖으로 스쳐가는 모든 순간이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글래시어 익스프레스(Glacier Express)’는 철도 여행의 백미다. 이 열차는 체르마트(Zermatt)에서 생모리츠(St. Moritz)까지 약 8시간을 달리는데,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익스프레스라는 이름과는 달리 느리게, 아주 천천히 풍경을 안겨준다. 이 열차에선 알프스를 관통하는 291개의 다리와 91개의 터널을 지나며, 말 그대로 자연의 품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스위스의 철도는 시간표 하나도 예술이다. 정시에 도착하고, 계절에 따라 노선을 바꾸며, 관광객을 위한 파노라마 차량도 운행된다. 특히 유레일 패스를 이용하면 주변국까지 손쉽게 넘나들 수 있어 유럽 여행 초보자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하루에 몇 번 운행되지 않는 특별 열차를 놓치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예약은 필수! 창가 자리도 놓치지 마시라. 열차가 산을 타고 오를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니까. 이 여정은 단순한 이동이 아닌, 슬로 트래블의 정수를 보여주는 시간이다.
기술과 감성이 만난 열차 천국 – 일본의 테마 열차 여행
일본은 철도 여행의 천국이다. 기차가 단순한 '이동수단' 그 이상의 문화이자 라이프스타일로 정착한 나라이기도 하다. 어느 지역을 가든, 단정하게 정비된 역과 시간에 맞춰 정확히 도착하는 열차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일본 철도의 진짜 매력은 ‘테마 열차’에 있다. 규슈 지방의 ‘유후인노모리(ゆふいんの森)’ 열차를 타고 유후인으로 향하는 길은 여행자의 마음을 간질인다. 우드톤 인테리어와 큰 창, 클래식한 음악이 흐르는 이 열차는 마치 한 편의 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승무원들이 직접 간식을 나눠주고, 지역 특산물도 판매하는 이 열차 안에서 사람들은 ‘여행’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도호쿠 지방에는 ‘토로코 열차’처럼 자연을 만끽하는 슬로 기차도 있다. 반면에 시코쿠에서는 ‘시만토’와 같은 로컬 특급 열차가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이어준다. 가장 놀라운 건 일본 열차는 ‘풍경에 맞춘 열차’가 있다는 것. 벚꽃 시즌엔 ‘벚꽃 열차’, 겨울에는 ‘설경 열차’가 따로 있고, 일부 열차는 아예 온천을 즐길 수 있는 탕도 있다! 기차역마다 도장 찍기나 도시락 수집도 철도 여행자들 사이에선 소소한 즐거움이다. 일본에서 기차 여행은 “목적지보다 여정 자체가 중심”인 여행 방식이다. 다양한 테마 열차를 타고 전국을 누비다 보면, 어느새 일본이라는 나라의 속살에 훌쩍 다가가 있을 것이다.
대자연을 가로지르는 장대한 여정 – 캐나다의 트랜스컨티넨탈 열차 여행
광활한 대륙을 가로지르는 열차 여행,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가? 캐나다는 그런 여행이 가능한 몇 안 되는 나라다. ‘더 캐네디언(The Canadian)’ 열차는 토론토에서 밴쿠버까지 무려 4박 5일에 걸쳐 달리는 초장거리 여정이다. 이 열차의 매력은 오직 ‘자연’이다. 도시를 벗어나 초원과 산맥, 호수를 지나며, 열차는 정말 느릿하게 대륙을 가로지른다. 로키산맥 구간에 이르면 ‘지금 이 풍경이 진짜인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해가 질 무렵, 캐나다의 황금빛 평원을 달리는 열차의 느낌은 평생 잊히지 않을 감동이다. 차량 내부도 매우 고급스럽고 아늑하다. 슬리퍼, 식당 칸, 라운지 칸까지 완비되어 있고, 무엇보다 천장이 통유리로 된 파노라마 전망칸은 이 열차만의 자랑이다. 운이 좋으면 야생동물도 관찰할 수 있다. 캐나다 철도청에서는 이 여행을 ‘슬로우 크루즈’라고 부를 정도로, 철저히 여유롭고 조용하게 흘러간다. 또 하나의 팁은 ‘가을 시즌’을 노리는 것. 캐나다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9~10월엔 트랙을 따라 황금빛 물결이 넘실거린다. 이 시기의 기차 여행은 마치 자연 속에서 그림책을 넘기는 느낌이다. 속도를 버리고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여행, 캐나다 열차는 그런 진짜 여유를 알려준다.
혼돈 속 낭만, 여행자들의 인생열차 – 인도의 로컬 기차 여행
인도의 기차는 단순히 철도 시스템이 아니다. 그것은 ‘인도라는 나라’를 관통하는 거대한 생활의 선(線)이다. 수백 개 도시를 잇는 광대한 철도망, 끝없이 펼쳐진 선로 위를 다채로운 사람들과 사연이 가득한 기차가 천천히 혹은 빠르게 오간다. 그리고 그 기차 속에는 인도 특유의 정취와 낭만이 숨어 있다. 여행자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열차 중 하나는 다르질링 히말라얀 레일웨이(Darjeeling Himalayan Railway)다. 이 열차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협궤 열차로, 증기기관차가 히말라야 산자락을 따라 유유히 올라간다. 달리는 속도는 매우 느리지만, 창밖으로 펼쳐지는 절경과 수많은 인도인들의 인사, 기차를 쫓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반면, 대륙을 횡단하는 ‘라즈다니 익스프레스’나 ‘샤타브디 익스프레스’는 훨씬 현대적이고 빠른 열차다.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며 인도 중산층 및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큰 인기를 끈다. 이 열차들은 식사가 포함되어 있고, 각 등급별 좌석이 나뉘어 있어 기차 내에서도 인도의 계층적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묘한 체험이 된다. 기차를 타고 인도를 여행하다 보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뿐 아니라 차 안의 삶도 함께 여행하게 된다. 대화하는 사람들, 차를 파는 상인,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 승객, 그리고 가끔은 전혀 알지 못하는 이와 나누는 따뜻한 도시락까지. 인도의 철도 여행은 혼돈과 아름다움, 불편함과 감동이 공존하는 ‘인생 경험’이다. 시간은 넉넉히 잡자. 인도의 열차는 예고 없이 지연되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 기다림조차도 이 여행에선 '한 페이지의 추억'으로 남는다. 인도 열차는 ‘목적지’보다 ‘사람’을 기억하게 해주는 여행이다.
피오르드와 북극광을 따라 – 노르웨이의 경이로운 철도 여행
노르웨이의 철도는 ‘북유럽 자연 다큐멘터리’를 실제로 체험하는 방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대한 피오르드, 눈 덮인 산맥, 빙하, 고요한 호수와 산장들… 그 모든 풍경을 창밖으로 감상하며 이동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교통수단이 바로 기차다. 그중에서 가장 전설적인 노선은 플롬스바나(Flåmsbana)다.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경사철도 중 하나로, 마이르달(Myrdal)에서 플롬(Flåm)까지 단 20km의 짧은 구간을 달리지만, 이 짧은 여정에 자연의 극적인 변주가 압축되어 있다. 초록의 계곡과 거센 폭포, 빙하가 녹아 흐르는 강물, 그리고 드문드문 보이는 산악 마을들이 계속해서 눈앞을 스친다. 노르웨이의 철도는 대부분 파노라마 창을 갖춘 관광용 차량이 많아, 천천히 풍경을 감상하며 이동하는 ‘여유로운 여행’을 가능케 한다. 특히 베르겐(Bergen)에서 오슬로(Oslo)를 잇는 베르겐 선(Bergensbanen)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도 중 하나로 꼽힌다. 이 노선은 해발 1,222m의 고지를 넘으며 스노 터널, 빙하 구간 등을 통과하고, 때로는 눈 속을 달리는 환상적인 장면도 연출된다. 겨울 시즌에는 북쪽으로 올라가 북극광을 감상할 수 있는 열차 여행도 인기다. 나르비크(Narvik)와 트론헤임(Trondheim)을 잇는 열차를 타고 북극권에 가까워질수록, 겨울밤 하늘에서 퍼지는 오로라가 차창 밖을 수놓는다. 열차 안은 따뜻하고 조용하지만, 그 창밖 세상은 마치 마법 같은 풍경의 연속이다. 노르웨이의 열차 여행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자연과 조화롭게 여행하는 법을 알려준다. 이곳의 철도는 단지 인간의 길이 아니라, 자연을 해치지 않고 이어가는 선이기 때문이다. 북유럽 특유의 정적과 압도적인 풍광을 그대로 품은 노르웨이의 철도 여행은, 마음속 깊은 평온함을 안겨주는 명상 같은 여정이 된다.
비행기는 빠르고, 자동차는 편리하지만, 철도 여행은 ‘이야기’를 만든다. 기차는 창밖을 스쳐가는 풍경과 차창 너머의 하늘, 기차 안에서의 사람들, 그리고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까지 모두 추억으로 남긴다. 스위스의 정교한 열차 시스템, 일본의 감성 가득한 테마 열차, 캐나다의 드넓은 자연을 관통하는 장대한 여정까지 — 이 세 나라는 철도를 통해 단순한 ‘이동’을 ‘경험’으로 바꾸는 법을 알고 있다. 가끔은 빠름을 멈추고 느림을 선택해보자. 기차를 타고 선로 위를 따라 걷듯이, 느리게 세상을 여행하는 법을 배워보는 것. 그것이 바로 철도 여행의 진짜 마법이다.